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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by 뿌리이덤 2023. 11. 25.

스탠리 밀그램은 1933년 8월 13일 뉴욕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헝가리 출신의 제빵업자였다. 아버지가 1953년에 세상을 떠나자 루마니아 출신인 그의 어머니가 빵 가게를 이어받았다. 밀그램은 학교에서 언제나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제임스 먼로 고등학교에 재학하던 동안에, 그는 연극 연출에 적극적이었다. 이때의 경험이 밀그램에게 영향을 크게 미치게 된다. 훗날 밀그램이 사실적인 실험을 설계할 때 이런 배경이 큰 도움이 되었다.

 정치학 학사로 뉴욕의 퀸스 칼리지를 졸업한 뒤인 1953년에 밀그램은 사회 심리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하버드 대학에 응시했다. 그때는 심리학에 학문적 배경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으나 1954년에 최종적으로 하버드 입학이 받아들여졌다. 밀그램은 1960년에 사회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전문가의 경력을 밟는 동안에 밀그램은 사회적 이슈에 초점을 맞췄다. 1959년부터 1960년까지, 밀그램은 사회적 동조에 관한 실험을 유명한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Solomon Asch) 밑에서 공부했다. 1961년에 밀그램은 자신의 유명한 복종 연구를 시작했다. 이 연구는 지금까지 실시된 심리 실험 중에서 가장 악명 높고 영향력 있는 실험의 하나로 남아 있다.

 밀그램은 1966년까지는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관계 학부의 조교수로 활동했다. 1967년에는 하버드 대학의 강사가 되었으나 종신 재자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가 논란을 부른 실험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해 밀그램은 뉴욕 시립대학 박사과정의 종신 교수가 되었다. 1984년 12월 20일, 스탠리 밀그램은 심장발작으로 뉴욕에서 사망했다. 겨우 51세였다.

 스탠리 밀그램은 복종에 관한 유명하면서도 대단히 논쟁적인 실험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밀그램은 권위가 복종에 끼치는 효과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거의 언제나 협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두려움 때문에 명령에 복종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 복종이 그들의 보다 훌륭한 판단이나 욕망에 반할지라도 말이다. 

 밀그램은 예일 대학에서 그 실험을 실시했다. 그는 신문 광고를 통해서 남자 40명을 모집했다. 참가자들에게는 거짓말로 기억과 학습에 관한 실험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또 참가자들에게 한 사람은 선생의 역할을 맡고 다른 한 사람은 학생의 역할을 맡을 것이며, 그 역할은 무작위로 선택된다고 말해주었다. 각 참가자는 제비뽑기했다. 이것 역시 무작위인 것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그 종이에 모두 "선생"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학생"은 밀그램의 팀에 협조하게 되어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같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참가자들 모두에게는 의도적으로 선생의 역할만 주어졌다. 그런데도 참가자들은 자신이 무작위로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이 실험의 내용은 간략하게 말하면 선생과 학생이 각각의 방으로 들어가 서로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선생이 점진적으로 전기충격(가짜)을 가하며 학생의 반응에 따라 선생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밀그램은 일단의 예일 대학생들에게 실험 대상자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충격까지 가할 사람이 어느 정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100명 중 3명 정도가 가장 높은 전압의 충격까지 가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밀그램은 자신의 연구에 참여한 학생들 중 65%가 450V의 충격을 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참가자들이 신음이나 못마땅해하는 듯한 웃음, 전율 등 내적 갈등의 신호를 보이긴 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이 실험에 계속 임하라는 관계자의 말에 복종했다. 실험이 끝난 뒤 참가자들을 면담할 때, 밀그램은 그들에게 전기 충격이 실제로 어느 정도 강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전형적인 대답이 "아주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는 식이었다. 밀그램은 심지어 참가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노력으로 실험하는 동안에 학생을 평가절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학생이 너무 멍청하기 때문에 전기충격을 받아도 싸다는 식으로 대답한 것이다. 밀그램은 이 실험을 통해서 "정상"으로 여겨지는 보통 사람도 어떤 상황에 부닥치면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밀그램은 그런 높은 수준의 복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명령에 복종한 비율이 높았던 것은 권위적인 인물(실험 관계자)이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 많은 참가자들이 실험이 예일 대학의 지원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믿었다.

* 선생과 학생의 역할을 맡을 참가자를 선택하는 과정이 무작위인 것처럼 보였다.

* 실험 관계자들이 유능한 전문가라는 인식이 있었다.

* 참가자들에게 전기 충격이 고통스럽긴 하지만 위험하지는 않다는 식으로 귀띔해 주었다.



 밀그램은 복종 연구는 윤리적 절차와 관련하여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는 배우가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에 참여한 실험 대상자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으로 믿게 되어 있었다. 이 실험은 대상자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방인을 해치고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충격을 안겨줄 수도 있었다.

 스탠리 밀그램은 많은 사람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인간성에 관한 위대한 통찰을, 간혹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는 그런 통찰을 제시했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복종 연구가 개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여줬다면, 그의 좁은 세상 실험은 사람들의 상호 연결성과 밀접성을 보여줄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연구는 믿기지 않을 만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심리학의 실험 역사상 가장 많이 논의된 심리학자 중 한 명으로 확실히 각인되고 있다.